KM Board 게시판

프랑스는 죽었다

관리자 0 3,252 2024.08.01 12:39

(브니엘 신학교 최덕성 총장님의 영어로 된 글을 챗GPT가 번역한 내용입니다)

프랑스는 죽었다 

 

2024년 파리 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 나는 프랑스의 종말을 바라보는 듯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만약 프랑스 시민들이 무슬림, 불교도 또는 힌두교도였다면, 예수의 동상을 이렇게 심하게 패러디할 수 있었을까? 

 

인류의 역사는 전적으로 종교와 정치의 역사이다. 파리 올림픽의 개막식은 대실패와 혼돈이었다. 이것은 프랑스와 서유럽의 현재 상태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개막식 첫 장면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묘사한 공연이었다. 그녀에 관한 많은 이야기는 가짜 뉴스이다. 그녀가 아들과 부적절한 성관계를 가졌다는 등의 가짜 뉴스를 퍼뜨려, 프랑스 시민들이 그녀를 죽였다. 

프랑스 혁명(1789-1799) 당시 정치 체제는 매우 억압적이었다. 그 시기 미국에서는 미국 독립전쟁(1775-1783)이, 영국에서는 명예혁명(1688-1689)이 일어났다. 유럽은 정치 체제를 변화시켰다. 그러나 프랑스의 정치, 경제, 종교 구조는 여전히 매우 폐쇄적이었다. 

시대의 발전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시민들은 왕을 처형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경찰을 죽이고 군대를 해체했다. 그들은 로마가톨릭 사제를 잡아 죽이고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을 처형했다. 프랑스는 혼돈에 빠졌다. 정치 체제를 제대로 바꾸는 대신, 무질서를 받아들였다. 

 

가장 심각한 정치적 위기는 시민들 앞에서 왕을 처형한 것이었다. 왕을 죽인 후, 다음 가는 정부 인사들을 죽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결국 시민들은 혁명을 주도한 사람들조차 처형했다. 

왕을 처형하자, 프랑스는 엉망이 되었다. 지도자가 없어진 나라는 혼란이 더 심해졌다. 국가 전체가 소란에 빠졌다. 주변국들은 이 틈을 타 프랑스를 침략하여 더 큰 위기에 빠뜨렸다.  

프랑스 혁명은 존중하거나 기념해야 할 사건이 아니다.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 가짜 뉴스 희생자인 마리 앙투아네트를 조롱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따라서 프랑스는 죽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예수와 그의 열두 제자의 마지막 식사를 묘사한 그림이다. 이는 성경 속 유명한 한 장면을 그린 것이다. 파리 올림픽은 이 기독교 예술 작품을 조롱과 모욕의 장면으로 패러디했다. 파리는 트랜스젠더와 LGBT의 아이디어로 혼란에 빠졌다. 

올림픽 예술 감독이 포용성과 표현의 자유를 위해 이슬람을 비슷하게 조롱할 수 있을까? 불교와 힌두교의 중요한 지도자들을 이렇게 패러디할 수 있을까? 프랑스에서 기독교는 죽었다. 이러한 무례와 경멸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한 마디 하지 않는다.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것은 프랑스 국민들의 감정을 반영한 것이다. 그 패러디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것은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모욕적인 공연이었으며, 기독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극도로 무례한 행위였다. 

예술 감독은 이것이 예술적 관용과 포용성을 보여주기 위해 계획되었다고 주장했다. 예술 감독이 이슬람 인물을 같은 방식으로 만들 수 있을까? 

파리 올림픽의 ‘최후의 만찬’ 패러디에서 남녀는 애정 어린 행동을 했다. 그 공연은 그들을 사적인 행동으로 묘사했다. 한 남자, 한 여자, 그리고 한 LGBTQ+ 개인이 함께 걸어가고 서로를 포옹하는 장면은 동성애를 미화하고 올림픽과는 관련 없는 인간의 타락한 욕망을 드러냈다. 다음 메시지는 “아이들은 보지 말라”였다. 

 

올림픽은 전 세계의 아이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비도덕적이고 혼란스러운 장면을 묘사한 후, 무대는 “아이들은 보지 말라”라는 문구로 마무리되었다. 그 위에는 ‘평등’이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었다.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어떠한 종교도 무시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파리 올림픽 개막식은 프랑스의 4년간의 준비 결과이다. 4년은 올림픽 정신에 맞는 무언가를 계획하고 제작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올림픽 정신과 전혀 관련 없는 선정적 장면을 선보이며 공개적으로 기독교를 조롱하고 인간의 비열한 욕망을 자극했다. 

‘관용’이라는 명목 하에, 프랑스는 다수의 인류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전 세계가 보는 올림픽의 무대에서 강요했다. 이는 폭력이며 분노이다. 

 

글로벌 사회라는 공동체에서 살면서, 우리는 상호 존중과 질서의 중요한 역할을 인식한다. 이러한 가치들은 단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조화로운 공존의 기초이다. 프랑스인의 자유는 다른 사람들의 자유도 존중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자유와 종교적 신념을 침해하는 폭력적인 예술은 위반이다. 예술은 미학적, 존재론적, 인식론적 가치를 표현하는 것이다. 

파리 올림픽 개막식은 프랑스 문화와 가치를 보여주며 글로벌 커뮤니티 간의 단결과 이해를 촉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어야 했다. 전 세계 공동체를 위한 행사에서 프랑스 예술의 정제되지 않은 표현은 프랑스의 죽음을 의미한다. 

프랑스 현대사의 단서는 저항의 이야기이다. 프랑스는 루이 16세에 대한 저항으로 독재에 저항한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독재는 끝났는가? 무질서로 인해 독재가 강화되었다. 

질서의 해체와 파괴를 메울 다음은 무엇일까? 다양한 세속적 요소들이 그 틈을 메우며 갈등, 무질서,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프랑스의 독재에 대한 저항은 또 다른 독재를 가져왔다. 

프랑스가 이슬람 국가였다면, 파리 올림픽 개막 장면에 대해 시민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들은 관련된 모든 사람을 참수하고 올림픽 경기를 중단했을 것이다. 그들은 알라 또는 무함마드를 모욕하거나 비판하는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참수했을 것이다. 

 

프랑스와 유럽의 좌파들은 성적 해방이 억압을 없앨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성적으로 억압받는 사람들이 욕망을 분출하여 혼란을 일으키고 있으며, 억압을 없애려면 성적 해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1920년대 독일은 유럽 국가들 중 가장 성적으로 자유로웠다. 나치 정부는 혼외 관계와 성적 해방을 옹호했다. 그들은 윤리를 제거하면 유대인을 자유롭게 죽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평등, 형제애, 자유를 외치면서 성적 해방을 강조했다. 

당시 독일의 광기는 기독교와 관련이 있다. 자유 신학에 빠진 독일 기독교는 무력했다. 독일인들은 낙태와 성적 부도덕을 자유롭게 행했다. 

히틀러의 나치즘은 전통 기독교 윤리가 무가치하다고 믿으며, 이러한 부도덕을 부추겼다. 히틀러는 인간의 존엄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독일 인종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전통적인 기독교 윤리를 해체하면서 우생학을 채택했다. 자유는 도둑질과 성적 부도덕을 의미했다. 독일인들은 그들의 감각이 최고라고 주장하는 실존 철학을 숭배했다. 

 

유럽에서는 쾌락주의가 기독교의 하나님을 대신했다. 유럽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쾌락주의를 그들의 신으로 섬긴다. 사람들이 신을 추방하면, 합리주의와 인문주의가 그 빈자리를 침범한다. 

프랑스는 신을 버렸다. 따라서 우리는 “프랑스는 죽었다”고 말할 수 있다.

Comments

Category
반응형 구글광고 등
State
  • 현재 접속자 27 명
  • 오늘 방문자 628 명
  • 어제 방문자 4,341 명
  • 최대 방문자 17,687 명
  • 전체 방문자 1,073,699 명
  • 전체 게시물 1,480 개
  • 전체 댓글수 0 개
  • 전체 회원수 30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