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선교

가는 비와 굵은 비 - 윤상수 선교사

관리자 0 4,099 2017.05.05 11:54
가는 비와 굵은 비
“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16:3)
우크라이나 말에 ‘쏜쩨 빠야빌샤’라는 말이 있다. 며칠동안 우중충한 날씨였으나 오늘은 ‘해가 났네!’라는 의미로 반가운 손님이나 친구가 방문하면 주인의 기쁜 마음을 표현하는 말이다.
우크라이나의 기후는 온대 대륙성 기후로 여름과 겨울 두 계절이 주(主)를 이룬다. 통계에 따르면 여름철 7월 평균 기온은 섭씨 18에서 24도, 겨울철 1월 평균 기온은 섭씨 영하 8도, 그리고 기후대가 다른 남쪽 흑해 바다 근처는 영상 2도에서 4도를 유지한다. 겨울 6개월간은 춥고 햇빛 보기가 어렵고 여름은 건조하고 덥다. 여름 동안은 봄, 여름, 가을을 각각 짧게 경험한다. 특히 겨울철 햇빛은 한달에 5일 미만이라 해가 난 맑은 날씨는 갓난 아이들까지 부모와 산책할 정도로 햇빛을 좋아한다. 그래서 여름에 비를 피하고 겨울에 눈을 피해 해가 난 날에 이사하는 것이 우리에게 정말로 ‘쏜쩨 빠야빌샤’에 해당된다.
선교사는 짐을 잘 풀고 잘 싸는 이삿짐 전문가다. 집 주인과 언어의 불통으로 몇 개월만에 쫓겨 나듯 짐을 쌀 때 차라리 시원하게 말 통했던 신림동 산동네 이사가 더 그립기도 했다. 잦은 이사로 노하우가 생겨 꼭 필요한 짐 이외에는 다음 이사를 위해 박스를 개봉하지 않는가 하면 또 짐 옮기는 일이 노동이라 생각되어 사역을 핑계삼아 아내에게 맡기고 도망가기도 했다. 이사 가는 곳마다 갑자기 월세를 올리니 계약서는 그저 종이에 불과했다. 입주할 때 이미 파손되었던 부엌 가구와 도구를 증명할 수 없어 우리가 모두 배상해야 했던 웃지 못할 일들이 즐비하곤 했다.
우크라이나에 정착한지 4년쯤 되었을 때 선교 장비인 차를 도난 당하고 그날 급하게 이사를 해야했다. 차 안에 아파트와 차고의 열쇠를 두었고, 면식범을 우려하는 성도들의 조언도 있고 해서 옆 동네로 밤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짐을 옮겨야만 했다. 별이 빛나는 깊은 밤에 차 잃고 아무 말없이 짐을 옮기는 해산한 아내와 엄마 등에 업혀 칭얼거리는 아이를 보며 나는 선교적 내공을 쌓아갔다. (1995년 여름)
체르노빌 핵 사고로 오염된 비가 이사 때 내리면 갑자기 이사하기가 싫어진다. 청명한 날에 기분 좋게 이사를 하는 날, 새 집에 도착하자 비가 막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피해 아파트 현관까지 단숨에 짐을 옮겨 한숨을 돌렸는데 마침 승강기가 고장 나 있어 마지막 층인9층까지 수십 번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짐을 옮겼다. 9층 창가에서 지친 팔로 뻗으면 닿을 것 같은 무지개를 바라보며 도시 나그네로서 유목민적 선교사의 정체성을 알아갔다.
그 해 여름은 엘니뇨 현상 때문인지 유난히 자주 비가 내렸다. 비가 올 때마다 9층 옥상에서 비가 새어 한밤에 자리를 옮겨가며 아이들을 재워야만 했다. 아파트 옥상의 방수가 부실하여 비만 오면 비상이었다. 비 오는 날 밖에 가는 비만 내려도 우리 방은 굵은 비가 떨어졌다. 걸음마를 막 시작한 작은 녀석이 물통과 비 떨어지는 천정을 번갈아 쳐다보다 머리를 적시고 젖은 손으로 얼굴을 훔칠 때는 코미디가 따로 없을 정도였다.
비가 오면 아파트 뿐 아니라 차에도 문제가 생겼다. 싼 값에 구입했다고 좋아하며 자랑했는데 이렇게 비가 샐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밤새 비가 오면 물통을 바꾸느라 선잠을 잤고 아침에 나가보면 축축한 차 시트 때문에 여름 내 비와 전쟁을 했지만 겨울이 성큼 다가와 비가 눈으로 바뀌자 전쟁은 일단락되었다. (1996.11)

조류학자들은 기러기들이 따뜻한 지역으로 날아 갈 때 자기들끼리 끼익 끼익 신호를 보내며 “자아 모두들 힘내자! 우린 꼭 목적지까지 간다. 다들 힘내자!” 라며 소통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사 할 때 마다 감사보다 불평이 더 많지 않았는지…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아무리 잦은 이사라도 철새 이동보다 더 나았어야 했다.
세월의 뒤안길에서 25번의 이사(2006년)를 통해 감사한 일이 많았다. 첫째는 잦은 이사로 동네 불량배들의 표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차를 도둑맞고 나서 1년 후 다시 차를 찾았을 때, 동네 불량배들의 소행임을 경찰을 통해 들었다. 둘째는 다양한 사람들을 사귈 수 있어서 감사했다. 다양한 현지인들 덕분에 합하여 선을 이루어 교회 설립에 도움이 되었다. 셋째는 월세가 싼 지역만 찾다 보니 서민의 삶과 그들의 눈높이를 알게 되었고 동네 주변 알코올 중독자들을 통해 향후 무료 급식 사역과 중독자 갱생 사역의 계기가 되었다. 넷째는 잦은 이사로 인해 항상 짐들이 정돈되어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 좋았다. 목사의 3필수인 설교와 순교와 이사 중에 항상 이사는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들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라는 말씀처럼 선교지에서 나그네 삶은 유목민 정신(Nomadic Spirit)을 가져다 주어 주님을 더 가까이 할 수 있었다. 부름 받은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나그네 같은 유목민으로 광야에서 살았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유목민으로 유랑할 때 하나님은 반석에서 생수를 내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은혜를 베푸셨다.
선교 전문가들은 21세기를 ‘신 유목민 시대’라고 한다. 그렇다. 선교사의 고향은 태어나고 성장한 곳이 아니라 사명으로 사는 그곳이 고향이며 보금자리다. 고향의 정착 문화는 자기 힘으로 무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선교사의 유목민 정신과 문화는 하나님만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광야의 하나님, 유목민의 하나님이셨던 역사적인 하나님이 오늘도 유목민 정신으로 살아가는 자와 함께 하심을 믿는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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