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선교

무상 의료란?

관리자 0 3,387 2019.01.22 05:40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말 4:2)

우크라이나는 세계적인 곡창 지대이며 유럽 내에서 러시아를 제외하고 제일 큰 땅과 대평원 그리고 기름진 흑토로 유명하다. 독일이 우크라이나에서 기차로 흑토를 실어갈 정도로 모든 농토가 옥토이다. 거름이 필요치 않는 세계적 곡창지대에서 열악하게 사는 것에 비해 좁은 땅에서 IT 강국 한국은 기적임을 이곳에서 새삼 깨닫게 한다.

이 넓은 땅에서 선교사가 사역을 위해 이리저리 다니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키예프 선교센터에서 크림반도까지 1000km 떨어져 기차로 스무 시간 정도 걸리니 갈 때마다 몸살이 났다 .

기차 속에서 갑자기 몸이 아파 몇 번이나 고생한 일이 있었으나 모두가 주님의 은혜로 지나갔다. 타 문화권에서는 한국인 체질에 맞는 마땅한 약도 없는데 다 외국인이 병원을 가려면 여러모로 절차가 복잡하다.

1996년 가을 키예프에서 크림 반도까지 혼자 스무 시간 기차를 탄 후, 늦은 오후 심페로폴 숙소 도착과 함께 바로 잠이 들었다. 이른 새벽 통증으로 깨어보니 배가 찌를 듯이 아팠다. 소화불량이나 체기로 인한 통증으로 생각하고 새벽녘 학교 운동장을 다섯 바퀴 뛰어 보았으나 오히려 배의 통증이 허리 부분까지 확대되어 참기 힘들었다.

119 긴급 전화인 03번호로 아픈 부분과 주소를 어눌하게 설명하고서 나는 수화기를 든 채 고꾸라지듯 쓰러졌다. 한참을 고통 속에 보낸 후 초인종 소리에 간신히 눈을 떠 문을 열 때 그렇게 고통을 주었던 통증이 사라졌다. 나의 설명을 듣고 난 의사는 음식 문제가 아니라 신장에 문제일 수 있으니 날이 밝으면 꼭 병원을 방문하라고 조언하고 떠났다.

낮에는 선약이 있어 분주하게 지냈고 또 별 통증이 없어 병원 방문을 미루었다. 하루를 마치고 자리에 누우려니 허리 통증이 또 시작되는데 이미 혼자 경험했던 아픔이기에 갑작스러운 두려움이 엄습했다. 새벽 1 시경 나는 배를 움켜잡은 채 응급차에 실려갈 수밖에 없었다.

선교지에 온 지 4년 차에 사역이 아닌 환자로서 현지 병원을 체험한 것이다. 그날 새벽 응급차는 병원 담당자에게 나를 인계하고 떠났다. 사무실.사무실 복도에서 통증이 계속되었으나 그 다음 조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능통하지 않는 현지어로 애걸하는 소리가 메아리쳐 되어 다시 들릴 때 나는 어찌 그리 처량했는지 모른다.

‘아! 나는 외국에서 아무도 모르게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며 복도에서 소리 지르니 어디선가 나타난 직원이 오히려 야단만 쳤다. 극심한 고통 가운데 담당 의사의 출근을 기다려만 했다. 한참을 웅크린 채 끙끙 앓고 있는 내가 불쌍했던지 당직 간호사가 일회용 주사기 대신 삶은 주사기로 진통 주사를 주니 그동안의 불평은 사라지고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창가로 비치는 가을 햇살을 조명 삼아 아픈 배와 허리를 번갈아 붙잡고 의사 출근을 기다리는 2시간은 마치 여러 날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출근 시간이 되어 응급 처방을 받은 후 서너 층을 겨우 올라가니 피로 얼룩진 매트리스 침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병실 환우가 통증에 지쳐 침대에 걸터앉은 나에게 자기 담요를 내어 줄 때는 그 사람이 마치 목마른 소자를 위한 냉수 한 그릇을 주는 천사 같았다. 피 묻은 매트리스 위에 담요를 깔고 누우니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던 피곤이 엄습하여 그냥 죽은듯이 잤다.

검진 결과 신장염으로 판정받았다. 그러나 의사는 신장과 요도에 결석이 보인다 며 소변시 잘 관찰할 것을 지시했다. 3일 입원하는 동안 현지 교인들과 후원교회의 중보 기도를 통해 주님의 은혜로 별 통증 없이 퇴원할 수 있었다.
퇴원 후 한 주쯤 지났을 때 드디어 소변을 통해 결석이 밖으로 나옴으로 신장염의 모든 해프닝은 일단락되었다.  이번 입원을 통해 현지 의료 시스템을 잠시 체험할 수 있었다.

현지인들의 열악한 삶 가운데 정부가 무상의료를 표방하지만 실제로 허울 뿐이었다. 환자 본인이 주사기와 알코올 심지어 소독솜을 구입하여 입원 중 간호사에게 건네주면 처치를 했고, 처방에 따라 입원 환자가 직접 약을 사서 복용해야 했다.  또한 관례대로 환자를 잘 보호해 달라고 담당 의사와 간호사에게 간단한 선물이나 돈을 건네주는데 일종의 대가성 뇌물로 생각되었다.

또한 선교사는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현지 성도들에게 근심을 주는 입원은 더욱 그러했다. 아플 때마다 나는 왜 선교사가 되었으며 앞으로 현지인들과 함께 울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나의 약함이 주님의 강함’이지만 현지인들이 이 진리를 믿음으로 알기까지는 나의 입원이 저들로 하여금 오히려 하나님을 비웃을까 걱정이 된다. 선교지에서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꾸준히 중보기도로 힘을 보태주시는 후원교회와 성도님들의 격려와 사랑의 수고에 늘 감사드린다. ‘우리는 기도할 뿐 하나님께서 치유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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