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선교

선교사의 부업(?)

관리자 0 3,728 2018.08.15 13:21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의 다양한 풍습중 그들의 장례 문화는 정교회 예식과 한국식을 섞어 놓은 형태이다. 다시 말하면 고려인은 슬라브식도 한국식도 아닌 절충된 장례 문화를 만들었다.

장례가 나면 발인 전까지 한민족 전통으로 하는 것 같고, 발인부터는 우크라이나 사회관습을 따라 나무 십자가와 정교회 신부가 앞서고 관 뒤에 유가족과 친지들이 장지까지 따라간다.

고려인 장례 문화에 두 가지 곤란한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고려인들이 정교회 성도가 아니기 때문에 장례 때마다 일정 금액을 내고 정교회 신부를 초청해야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관 덮을 명정에 전통적으로 내려 오는 한자 글귀를 쓸 수 있는 보유자가 점점 세상을 떠나므로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첫번째 문제는 그 때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었으나 두번째 문제는 경황이 없을 때 먼 동네까지 가서 명정을 쓸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될 형편이다.주로 밭농사 위주의 생업에 종사하는 고려인들에게 이 명정 문제는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신앙적으로 볼 때 명정은 별 의미가 없으나 그들의 장례 문화를 공감하는 일은 선교사로서 중요한 일이다.

중앙아시아에서 고려인들이 한민족 문화를 형성하여살 때 명정쓰는 일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고려인들이 구 소련 각 공화국으로 자유롭게 흩어지다 보니 한자는커녕 한글로 명정을 쓸 수 있는 분을 찾기 어려웠다.그래서 300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부터 명정을 쓰기 위해 선교사를 찾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우리 교회를잘 다녔던 고려인 김 발로제 할아버지가 68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때, 선교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장례식을 집례했다.그들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명정을 척척 쓰고 입관과 발인을 통해 3일간 전도 설교를 통해 복음과 함께 하나님의 위로를 유가족과 조객들에게 전했다. 

목회자 가운을 입고 발인 예배를 인도한 후,현지 브라스밴드의 연주에 따라 나무 십자가를 앞세워 정교회 신부처럼 앞서고 유족과 조객들이 뒤 따라행진을 하였다. 그리고 하관까지 은혜롭게 마쳤다.

선교사가 일사천리로 장례절차를 진행하니 유족과 고려인들의 고객(?)만족도는 최고였다. 왜냐하면 장례가 날 때마다 절차 문제로 고려인끼리 옥신각신하는 일이 많았는데, 선교사가 집례하는 절차는 모두 한국의 오리지널(?) 기독교 문화라고 믿었으니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명정의 내용도 선교사가 쓰는 것이 곧 법이 되었다. 명정을 쓸 때 이름 앞에 ‘학생’, ‘유인’ 대신에 ‘성도’ 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글을 아는 어르신들이 ‘성도’의 의미를 물을 때 ‘성도’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었던 거룩한 자라고 말했더니 앞으로 모두 그렇게 써달라고 주문했다.

그 이후부터 상주들이 ‘성도’라고 기록해야 돌아가신 부모님이 천국을 간다고 생각하고 모두 ‘성도’ 단어만 주문했다.천국은 어떤 삶의 형식이나 행위로 말미암아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들어간다는 것을 믿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장례식을 은혜롭고 성대(?)하게 치루고 나니 그 다음 주일 고려인 어르신들이 예배에 참석하였다. 일단 교인 등록을 해야 목사님이 ‘성도’ 단어를 명정에 써줄 것이고 또 본인 사후에 장례 집례를 기대했기 떄문이었다.장례식을 통해 어르신들이 교회에 대한 호기심들을 갖게 되었고 특히 선교사를 인정하고 신뢰하는 계기가 되어 주님께 감사했다.

안식년을 맞아 한국으로 귀국한다는 광고를 하자 어르신 교인들이 걱정하며 선교사에게 청탁하는 일이 발생했다. 서울가기 전에 자기들의 명정을 미리 써놓고 떠나라는 것이다. 명정은 장례가 나야 준비하는 것이지만 선교사 부재 중에 혹시 본인 장례라도 나면 자녀들을 위해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낫다는 것이었다.

며칠 동안 거절하다 명정을 미리 써 주는 것도 믿음으로 죽음을 준비하는것 같아 원하는 자 모두에게 써주기로 결정하고 광고를 하니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명정을 쓰는 날은 가정적으로 특별한 날이다. 선교사가 심방을 가면 직장나간 자녀들도 잠시 집에 와 함께 예배에 참석하였다.설교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가족을위해 한명씩 안수하며 축복했다.

가족 잔치같은 풍성한 점심을 나누고 명정을 쓰기 시작하면 온식구가 뚫어지게 명정을주목한다. 대학 졸업후 취미생활로 서예를 했던 것이 이렇게 사용되는구나 생각하며 나만의 미소를지었다.
 
명정을 다 써주고 나면 항상 명정 당사자는 “먹싸님 아심차이심더(목사님 고맙습니다)”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명정을 써주고 당사자로부터 감사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은 선교사 이외는 없을 것이다.
 
사역에 있어서 ‘선교 커뮤니케이션 과정’은 중요하다. 특히 수신자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은 현지인들의 필요를 채워주므로 명정 쓰는 사역은 온 가족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오늘도 영하의 날씨이지만 미끄러운 빙판 길을 조심하며 복음을 들고 선교사를 간절히 기다리는 어르신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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