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선교

카이레테 우크라이나

관리자 0 3,873 2017.11.13 07:15
카이레테 우크라이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 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대하 14:11)

우크라이나는 동 슬라브족(우크라이나, 러시아, 벨라루시아)에 속한 나라로, 지정학적으로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 끼어 유럽의 동진 정책과 러시아의 서진 정책이 충돌하는 권력 투쟁의 장소였다. 드네프로강을 중심으로 동서(東西)로 나뉘어진 우크라이나의 서부는 유럽, 그리고 동부는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국민들의 정서적 갈등이 심각하게 나타난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는 10세기 동 슬라브족 최초 국가인 키예프 루시(Kievan Rus')의 발상지로 ‘종가 집 본가’ 의식과 함께 러시아에 대해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 키예프 루시의 문화적, 종교적 유산은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와 러시아 건국의 토대가 되었다. 키예프 루시는 비잔틴으로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인(AD. 988) 블라디미르 대공 시기(AD. 980-1015)에 황금기를 지내고 그 후 수많은 내전을 거쳐 13세기에는 몽고의 지배를 받았다. 키예프 루시는 키예프 공국과 노보고로드 공국으로 발전하다 몽고를 물리친 모스크바 공국이 강성해지면서 키예프 루시의 중심은 점점 모스크바로 이동했다. 그 후 모스크바 대공국은 제정 러시아와 공산주의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17세기에 제정 러시아와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전쟁 이후 안드루소보 조약에 따라 러시아와 폴란드가 드네프르강 동,서부를 각각 차지함으로써 우크라이나 동서 갈등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 후 18세기 폴란드-리투아니아가 분할됨에 따라 폴란드가 지배했던 서부 지역마저 제정 러시아에게 넘어가 그 당시 제정 러시아에 속했던 우크라이나 지역은 큰 영토를 갖게 되었다.

1991년 우크라이나는 구 소련 연방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유 시장 경제 체제와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하고 있다. 2004년 연말부터 시작된 평화적인 ‘오렌지 혁명’ 이후 정치적 불안 속에 정권이 바뀌어 왔다. 친 러시아계 대통령이 유럽연합과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중단하고 러시아와 관계 강화를 선언하자, 반대하던 서부 지역 국민들이 대규모 항의 시위를 하였다. 결국 이 시위를 통해 2014년 2월 ‘피의 목요일’ 유혈 사태로 100여명 가까이 사망하였고 대통령은 러시아로 망명하였다.

대통령이 물러난 혼란의 시기에 무장한 수만 여명의 러시아 군인들이 크림 반도 주(州)를 점령하여 서방 국가들과의 신(新) 냉전이 시작되었고, 또 크림 의회는 러시아와 합병하기로 결의하고 주민 투표를 거쳐 크림 반도는 러시아와 합병되었다. 크림 반도가 러시아에 합병되자 동부 지역의 2개 주(州)도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을 선포하였고 국제사회의 인정과 러시아에 합병을 요청하였다. 지금 우크라이나 정부는 동부 지역의 독립과 합병에 반대하는 내전 속에 힘든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크림 반도가 러시아로 합병 됨에 따라 나는 22년간 선교했던 크림 반도에 더 이상 체류할 수 없게 되었다. 3년 전 러시아 무장 군인들이 크림 반도로 침입했을 때, 며칠을 기도하며 지켜보다 외국인들은 도시를 떠나야 하는 대사관의 권면과 교회 리더들의 요청으로 선교사들과 유학생 모두 11명이 현지 교회와 성도들을 뒤로 한 채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 후 이렇게 다시 그 곳에 체류할 수 없을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나의 청춘을 다 보냈던 그리고 정 들었던 고향 같은 크림 반도를 생각하며 성도들이 너무 그리워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 선교를 후원했던 교회와 성도들을 만날 때마다 불평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평만 하다가 오히려 기도 중에 감사로 바뀌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선교 이양에 관한 것이었다.
해롤드 풀러 박사는 “선교단체와 현지교회와의 발전 관계”에서 개척자, 부모, 협력자 그리고 참여자 단계가 있다고 말했다. 선교사가 교회를 개척하고, 영적 부모로서 제자를 양육하고, 또 양육된 지도자를 목사로 안수하는 것은 주님의 은혜다. 그러나 마지막 ‘참여자’ 단계는 선교사가 완전히 그 땅을 떠나야만 이루어지는 단계라 쉽지 않다.

그러나 크림 사태로 그곳에 더 이상 체류할 수 없게 되자 어느새 나의 리더십이 자연스럽게 리더들에게 이양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 전부터 신학 훈련을 마친 리더들이 안수를 받고 교회를 담임함으로 사역 이양은 어느 정도 되었으나 진정한 리더십 이양은 아니었다. 각 교회들이 선교사를 기다리다 지쳐 오히려 주님을 더 의지하고 자립하고 있어 감사하다. 이제는 불평하기보다 합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께 감사드린다.

크림 사태가 났을 때 선교사와 현지 교회가 우크라이나를 위해 함께 기도했다.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 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유다의 아사 왕이 침입자 구스 군대를 보고 부르짖었던 기도였다. 이 기도가 우크라이나와 크림 반도 성도들에게 계속 되길 소원한다. 우크라이나가 동서의 갈등으로 고통을 앓고 있지만 이 기회에 하나님을 더 신뢰하고 의지하는 민족이 되길 기도한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말하며 ‘카이레테(cairete)’를 외쳤다. ‘기뻐하라’는 헬라어 명령어를 오늘 나의 우크라이나에게 선물하고 싶다. 우크라이나여 이제 주님을 더 의지함으로 카이레테 하라!

카이레테 우크라이나!(기뻐하라 우크라이나!)
카이레테 엔 큐리오 우크라이나!(주 안에서 기뻐하라 우크라이나!)
카이레데 판토테 우크라이나!(항상 기뻐하라 우크라이나!) (20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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