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반석책방

죽기 살기로 성경 읽기 - 김영표

관리자 0 1,489 2020.03.23 13:23

 

수많은 예배를 인도하고 찬양을 불렀다. 그러나 성령의 기름이 아닌 자아의 기름을 짜내며 사역했기에 늘 갈급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열 살 난 아들에게 “아빠가 예수 믿는 사람인 것 같아?”라고 물어보았다가 “글쎄”라는 충격적인 대답을 듣고 기도의 골방으로 나아갔다. ‘나 하나만으로 정말 만족하느냐’는 주님의 음성에 대답하지 못했다. 이내 터져 나온 눈물과 회개의 통곡 속에서 무언의 음성을 들었다. ‘말씀 앞에 직면하라!’ 주님이 주신 마지막 기회였다. 
그렇게 280일간 죽기 살기로 성경을 읽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 시간 동안 말씀이신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렸으며, 하나님과의 연합만이 인생의 목적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목사라면 당연히 말씀을 읽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변 사람들의 빈정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성경을 읽는 것은 은혜로만 가능한 일임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죽기 살기로 성경 읽기!’를 외치며 매일같이 쏟아지는 하늘의 만나를 풍성히 누리고 있다.  

 

책 속으로

 

“아들! 아들이 생각할 때 아빠가 예수님 잘 믿는 사람 같아?” 
아들은 아무 말 없이 한동안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재촉하듯 다시 물었다. 
“네가 볼 때 아빠가 정말 예수님 믿는 사람 같냐고….” 
하지만 아이는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 조그마한 입술을 오물오물할 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미적거리는 걸까?’ 
나는 아이가 이런 대답을 준비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아빠는 예수님 믿는 사람이죠, 방금 전까지 목이 터져라 예수님을 외치면서 찬양인도도 했잖아요. 수요일 낮 예배랑 저녁 예배, 금요심야기도회, 주일 1, 2, 3, 4, 5, 6, 7부 예배, 아빠가 섬기지 않는 예배가 어디 있어요? 그것도 모자라서 쉬는 월요일에도 나랑 놀지도 못하고 다른 집회에 가서 예배인도하고 오잖아요. 이런 아빠가 예수님 믿는 사람이 아니면 도대체 누가 예수님 믿는 사람이겠어요? 아빠는 분명히 예수님 믿는 사람 맞아요!” 
적어도 이 정도의 대답을 기대했던 나는 곧이어 나온 아이의 대답에 돌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글쎄요….”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싶어 다시 물었다. 
“뭐라고?” 
변함없는 아들의 대답. 
“글쎄….” 
이 말은 내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이어 아이는 열 살짜리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어려운 말들을 내게 쏟아냈다. 마치 돌아가신 선지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서 내게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아빠 속마음을 어떻게 알아요. 하나님만 아시죠! 그리고 아빠 속마음은 아빠가 나보다 더 잘 알잖아요!” 
(8-11p. 프롤로그) 


‘전부와 최선’ 
비록 이 두 단어가 5밀리미터 정도의 미세한 차이를 가졌다 할지라도 그 차이를 없애지 않는 한 같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가깝지만 영원히 서로 다른 길을 가는 평행선처럼 말이다. 
성경을 더욱 정확히 보고 즐거워하며 말씀이 결론이 되도록 살았더라면 주님이 나의 최선이 아닌 나의 전부란 믿음으로 살았을 텐데… 아쉬움보다 그 이상의 죄송함이 밀려왔다. 아니, 그 이상의 어떤 힘이 나를 엄습했다. 
‘나는 그동안 말씀을 어떤 가치로 여기며 살아온 것일까?’ 
1년 전부터 이른 아침마다 말씀을 읽기 위해 교회로 가던 아내와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소리 없이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주님. 
‘죽기 살기로 치열하게 말씀 앞에 서라!’ 
그것은 명령이었다. 그 명령은 매우 강력해서 어쩌면 주님과 연합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버려지기 직전에 거저 주어진 마지막 기회. 
(28-29p.) 


‘이런 몸 상태에서 읽는 것보다 정신이 맑아졌을 때 읽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이어 찾아온 최대의 유혹,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미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였다. 
‘이렇게 읽어 내려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난 곧장 그러한 생각들을 부숴버렸다. 
부어 있는 얼굴, 충혈된 눈동자, 컨디션이 좋지 않은 몸뚱이, 
교회 권사님들이 보면 분명 “아이고, 목사님 좀 쉬세요”라며 뜯어말릴 육신의 모양새다. 
그러나 하나님 다음으로 내가 나를 가장 잘 안다. 
지금 나의 문제는 육체적 피로의 문제 이전에 두 마음이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읽어야 한다’와 ‘읽기 싫다’의 싸움, 
‘직면해야 한다’와 ‘직면하기 싫다’의 영적 전쟁인 것이다. 
(69-70p) 


“40일만 죽기 살기로 치열하게 말씀을 읽어보세요. 
숨겨놓았던 1퍼센트 때문에 주님을 향한 99퍼센트가 위험한 지경에 놓일 수 있습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변질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찾아 바로 십자가에 못 박으세요. 
말씀 앞에 직면하려고 죽기 살기로 치열한 행동들을 하게 되면 처음과 달리 얼마 지나지 않아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분명 세상은 말씀 읽을 틈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분주한 일들이 더 생기고, 예상치 못했던 일들도 생길 것입니다. 
말씀 읽는 것이 무의미해지고 아무런 은혜가 되지 않아 자신이 미련하게 보일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러한 마음이 들면 들수록 더욱더 간절히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때 복음의 능력과 비밀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어느새 치유되어 있는 나, 변화되어 있는 나를 보게 될 것입니다. 
내 안에 주님을 향한 멈출 수 없는 사랑, 그 불이 있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닌 성령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175-177p.) 


며칠 후 나에게 진짜 큰일이 일어났다. 마음이 설레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얼굴에는 마냥 미소가 가득했다. 진정한 애인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나는 멀리서 짝사랑만 했던 주님과 사귀기 시작했다. 주님의 마음이 어떠한지, 주님의 관심이 무엇인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또 무엇인지, 내 마음은 온통 주님을 향한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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