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의 마지막 내용을 보면 한 레위인의 첩이 베냐민 지파의 악한 비류들에게 집단 강간을 당하고 죽는다.
이에 그가 그 첩의 시체를 열두 덩이로 나눠 이스라엘 각 지파에 보낸다.
온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 악을 도말하기 위해 미스바로 모이고, 베냐민 지파에게 그들을 내어놓으라 말한다.
그러자 베냐민 지파가 그것을 거절한다. 그 결과 하나님께선 삼일째 전투에서 베냐민 지파 전체를 이스라엘 온 자손에게 넘기신다. 베냐민 족속은 소수의 인원들만 남겨진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진멸을 당한다.
이 내용엔 계속 얘기해왔던 두 맥락이 있다.
첫째는 회중 차원 입장의 확정, 둘째는 칼을 빼들고 미스바에 집결한 온 이스라엘 족속들의 목적이 죄악을 도말하는 척결에 있었다는 점이다.
본래 이 사건의 시초, 당사 존재는 베냐민 지파 안의 비류들이었다. 그러나 베냐민 지파 전체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앞에서 그 악을 '옳은 것으로 용납'하는 입장을 정하여 그 죄와 상관을 이루게 된다. 그들은 죄악을 도말하고자 모인 이스라엘의 칼에 멸족에 가까운 진멸을 당한다.
칼날에 쓰러진 이들은 그 죄를 범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애들부터 시작하여 개인 차원에선 베냐민 지파 전체 입장과는 다른 입장을 지닌 이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상위 차원에 떨어지는 칼은 누구도 피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악을 도말하겠다고 부르짖는 이스라엘의 손에 베냐민 지파를 넘기신 것은 베냐민 지파 전체의 공식 입장이 그 죄를 용납한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회중 전체의 입장은 그 아래 거하는 개개인과 소규모 차원의 회중을 초월하여 존재한다. 권위 체계라는 영적 세계의 본질, 그 질서 안에서 회중 전체가 권세에게 넘겨지는 것은 개인과 소회중의 차원을 초월하여 벌어지는 상위 차원의 문제다. 심판이 상위 차원의 죄에 떨어지면, 그에 속한 모든 개개인은 피할 길이 없다. 개인 차원에서 동의 안 한다 할지라도 상위 차원이 죄악과 상관을 이루면 개인 역시 상관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 이들은 WCC에 대해 "우리가 그것을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문제를 '그들만의 미친 짓'으로 생각하여 본인들과 상관없다 여긴다. 당연 그로 인한 심판의 문제도 가벼이 여긴다.
그러나 WCC는 각 교단, 단체들이 유기적으로 모여 전교회적 '한국교회'로서 벌인 공식 우상 숭배였다. 북한 정권을 잉태하여 6.25 전쟁의 열매를 낸 신사참배와 마찬가지로 개별 교단과 교회의 차원을 초월한 '한국교회'라는 상위 차원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전교회적 '한국교회'의 공식 우상 숭배는 '한국교회'가 우상의 권세 아래로 들어가게 된 것, 하나님 앞에서 '예수 믿는 제사장 국가'라는 정체성이 부여된 대한민국이 태양신 신정 체제인 북한 정권의 권세 아래 들어가게 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WCC를 반대하는 모든 이들 역시 그 죄악과 상관을 이루게 된 것을 의미한다.
죄악을 옹호하여 베냐민 지파 전체처럼 죄를 멸할 칼에 넘겨질지, 아니면 칼을 든 '이스라엘'처럼 전교회적 '한국교회'로서 우상과 상관한 모든 목사와 교회, 단체들을 쓸어버릴지는 우상과 상관없는 '한국교회'로서 확립을 하느냐 못 하느냐의 문제다. 끼리끼리 부르짖기만 하며 우상 세력을 '한국교회' 안에 내버려두는 것은 곧 '한국교회'로서의 확립이 아닌, '한국교회'로서 우상과 연합하겠다는 공식 입장 확립을 유보케 하는 행위인 것이다.
우리가 중보해야 할 것은 이스라엘 전 지파들에게 시체 조각을 보내어 죄의 실상을 알게 함으로써 온 이스라엘이 칼을 들고 이스라엘로서 모이게 되었듯이 칼을 든 '한국교회'로서의 확립을 이룰 '죄악의 조명(계속 얘기해왔던 그 맥락)', 그렇게 확립된 '한국교회'의 손에 우상 세력들을 붙여달라는 간구, 그리고 그 척결을 동반한 '한국교회' 차원의 공식 회개의 기회다.
또한 실상 그런 문제를 초월하여 회복이 있든 없든 죄악의 당사 존재가 해야 할 일은 죄악과 상관없게 되는 겸비함을 갖추는 것뿐이다. 하나님을 살아있는 존재로서 대한다면 얽혀져 있는 우상 제단과 세력과의 문제부터 정리하는 열매가 시작돼야만 하고 대대적으로 이뤄져 전교회적 차원까지 올라가야만 한다.